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개변된 역사 (문단 편집) == 미국 == 중립법 때문에 원칙적으론 전쟁 중인 국가에 대해 어떤 지원이나 무기 판매를 금하지만 페르디난트 황태자와 바이츠제커 외무장관의 로비로 민수용 석유와 트럭을 네덜란드를 통해 판매하게 되며 루즈벨트 대통령 역시 신정부를 정식 정부로 인정한다. 핀란드가 겨울전쟁에서 승승장구함에 따라 지원을 결정한다. 프랑스의 라 로크 정권을 파시스트 정권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에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석유 운송 차량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중립법을 근거로 무전기와 석유 수출을 중단하기로 선언한다. 작중 감정에 휩싸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라 로크는 이에 처음으로 분노한 모습을 보인다. 루즈벨트는 독일과 영국에 대한 랜드리스를 고려하지만, 여전히 대공황의 늪이 심한 상황에서 미국에 밀입국한 트로츠키에 의해 사회주의 시위가 격화되면서 랜드리스 포기를 고려 중이다. 더불어 보수파 부통령 존 가너가 대권에 도전하면서 민주당은 분열했고, 미국은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존 가너는 선거 직전에 루스벨트가 대선후보로 부적절하다고 당내 정쟁을 벌이다 끝내 루스벨트의 소아마비 장애까지 공론화시키나 오히려 엄청난 비판을 받고 미국 정계에서 매장당하고, 분열된 민주당을 대신해서 어부지리로 1940년 미국 대선의 승자는 공화당의 [[웬델 윌키]]가 된다. 그러나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각 53%와 47%로 막상막하의 승부로 간신히 이겼고, 그에 따라 당내 강경보수파와 현 대통령을 포함 온건진보파간의 갈등이 점화되고 있다. 한편, 독일에 온 보잉의 기술자들이 B-17과 동일 혹은 비슷한 엔진으로 He-177을 공동으로 마개조하여 HeB-177 전략폭격기를 완성시킨다. 현재는 [[웬델 윌키]] 정부가 노동자 구제책 유지를 발표하고, 공화당은 경기 회복을 위해 아예 중립법을 개정시켜서 연료, 트럭, 식량과 원자재 뿐만 아니라 이젠 무기까지 연합군에 팔기 시작해 전쟁 특수를 누리기 시작하며 대공황의 여파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 일본 해군이 본격적으로 [[대동아공영권|아시아에서 세력을 넓히자]], 하와이 [[진주만]]에 자국 함대를 대거 배치한다. 이후 로버트 태프트와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특사로서 독일을 방문하고, 미국은 연합국이 자유 러시아를 정식으로 인정해주고 소비에트 연방의 전복을 지원해주길 바란다며 만약 이 제안이 성사될 경우 의용병 10개 사단 20만명을 파견하고, 독일 등 연합국 국가에 대한 무기 대여와 채권 구매 의사, 필리핀 인근 해역의 중립화와 일본군 철수에 대해 조정안을 제시하겠다고 제안한다. 또한 자유 러시아군과 자유 우크라이나군 200만 전부의 무장을 일체로 지원하고, [[M4 셔먼|셔먼 중형전차]] [[랜드리스|5000대(!)를 대여해주겠다고 한다]]. 디트리히 샤흐트는 지금까지 독일이 연합국에 했던 지원을 [[쇼미더머니(동음이의어)|단숨에 빛바래게 만드는 위엄]]에 쓴웃음을 짓는다. 독일 측에서 국방장관 명의로 진주만 공격 가능성에 대한 보고서를 보내주지만 공화당 등의 회의적인 반응으로 인해 묵살되고 1942년 1월 25일, 일본 제국의 진주만 공격함대가 [[진주만 공습|진주만을 공습하고]] 미국은 마침내 태평양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그러나 연합국에 가입했지만 이때 일본에게 전력을 집중하고자 일본에게만 선전포고했으나 소련에게는 하지 않은 상태로[* 소련 측도 일본이 [[자폭|미친 짓]]을 했다는 것을 알기에 즉시 일본과의 동맹을 파기했다.] 미국과 소련이 정식으로 전쟁 중은 아니다. 자유 러시아가 소련 서기장이 탑승한 수송기를 격추하자 소련 일부 주전파에 대한 대응 공격 중 발생한 사고로 처리하고 매카시즘 광풍에 휩싸인 공화당 정권이 자신들이 후원한 국가가 친 사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소련 주전파에 대한 대응 중 사고로 처리하고 연합군에 막대한 양의 물자를 무상으로 지원하여 전쟁을 이어나가려고 한다. 하지만 사건의 수상한 정황이 밝혀지면서 동부전선의 주축인 독일의 여론이 반전으로 돌아서고 자유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연합국도 더 이상 전쟁을 지속할 여력이 없어서 소련과 평화협정을 맺어 붕 뜬 입장이 되어버렸다. 그 후에는 대일전에 집중하면서 필리핀을 중심으로 싸우는데 육전에서는 끈질기게 방어전을 펼치면서 버티고 해전에서는 독일, 영국과 연합함대를 결성해 [[레이테 만 해전|함대결전을 벌일 때]] 미국 항모함대가 [[구레 군항 공습|일본군의 후방을 급습하면서 마지막 일격을 가해]] 일본 해군을 괴멸시킨다. 그리고는 필리핀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낸다. 하지만 미국이 지원한 자유 러시아가 소련을 공격했다가 참패하자 이를 덮기 위해 대일전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어서 덮으려한다. 그 와중에 [[사이판 전투|사이판을 확보해]] 일본 본토 도쿄에 가한 고고도 정밀폭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도쿄 대공습|영국, 독일과 연합해서 저고도에서 무차별적으로 도쿄에 소이탄을 퍼붓는다.]] 독일에 의해 731부대의 만행이 공표된 이후에는 미국 전체가 분노. 일본 천황을 살리자고 주장하였던 맥아더를 해임시키고 자유 러시아로 좌천시킨 뒤 [[아이젠하워]]를 후임으로 임명한다.이후 꼭지가 돌아버린 [[커티스 르메이]]가 오사카를 폭격하여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고, 영국과 독일과 함께 천황을 죽일 계획인 "무너진 태양" 작전[* 참으로 적절한 이름이다. 태평양 전쟁 전까지 일본은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라고 불렸다.]을 실행하게 된다. 이후 무너진 태양 작전으로 일본이 항복하게 되자 회담에 참여하여 오키나와, 규슈, 시코쿠를 제외한 일본 본토의 신탁통치를 담당하면서 남사할린과 쿠릴 열도를 할양받는다. 전후 미국은 [[웬델 윌키]] 대통령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는 역사의 지도자를 꿈꿨다.'라고 말한 뒤 병사하고, 그 뒤는 민주당의 헨리 A. 윌리스가 이어 독일, 영국과의 친분 관계를 이어가고, 반공주의를 넘어 소련과의 화해를 추진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다. 헨리 A. 월리스 대통령은 독일, 영국, 소련과 함께 국제연합(UN)을 창설하고 이를 통해서 세계는 냉전을 피하고 재건과 화합의 길로 가게 된다. 단 UN은 원역사와는 달리 독일, 미국, 영국, 소련을 상임이사국으로 하여,[* 원 역사에서는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5개국이다.] 의사결정에서 상임이사국의 만장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회원국의 투표를 통해 90%이상의 찬성이 이루어지면 통과된다는 추가 조건이 붙었다. 그러나 월리스가 물러난 뒤 자신들의 힘을 깨달은 미국은 다시 공격적 행보를 보여 중국과 사할린을 중심으로 [[냉전]]이 도래. 핵전쟁 위기가 닥치지만, UN의 중재로 위기를 피해가게 된다.[* 독일이 발표한 핵무기의 위험성이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에 큰 역할을 했다. ] 현대 미국은 단일국으로서는 독일, 영국, 소련 모두 압도하는 강력한 국가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력 한계로 실제 역사에서의 외교적 영향력은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덕분에 베트남, 이스라엘을 비롯한 원 역사의 악명 대신 [[아메리칸 드림]]의 희망적인 국가로서의 면모가 더 남게 된다. 디트리히의 말로는 원 역사의 절대적 패권을 가지지는 못한 대신 베트남 전쟁 같은 국력 낭비가 없어져 국력은 실제 역사 이상일 것이라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